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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미스터리>세계 7대 불가사의 - 아르테미스 신전

by Free_A 202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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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아르테미스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으로서

달과 사냥, 그리고 동물과 처녀를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그녀는 거칠고 복수심이 많은 여신이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숭배하였습니다.

이유는 그녀는 다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신이기도

했기때문인데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 아르테미스 동상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의 최초 원형은 청동기 시절의 건축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건축물을  아마존이 건설했다고 믿고

신성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BC 7세기 경 홍수로 인해

신전은 완전히 부숴졌다고 합니다

기원전 550년 경  에페소스의 대군주인 크로이소스는

신전을 다시 재건하기로 결정한다.

 

크로이소스

그는 크레타의 건축가인 케프시프론과 케프시프론의

아들인 메타게네스에게 재건을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소요된 시간은 자그만치 120년이라고 한다.

그렇게 120년간 공들인 아르테미스 신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들게 하는것이였다.

 

총 길이는 120m, 폭 60m, 높이는 18m로

원형기둥이 127개나 사용된 어마어마한 크기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2배였다고 한다.

이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최초의 신전이였다.

 

아르테미스 신전 복원사진

 

 

 

 

 

 

 

 

 

아르테미스 신전을 바라보는 학자

고대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

"인간이 지은 모든 건물을 능가하는 신의

성전이다 " 라고 하였다.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웅장함과 신성함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경배를 표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의 아버지

[헤르도토스]

 

헤르도토스는 아르테미스신전을 직접 본 뒤

"기자의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스와도 견줄수있는 최고의 걸작"

이라고 표현했을정도로 웅장함과 신성함이 극에 달했다고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비극

기원전 356년

아르테미스 신전은 다소 이해할수없는 일로 파괴되는데요..

 

그리스의 최악의 방화범으로 불리는 헤로스트라투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그는 악행을 저지르려면 확실하게 악행을 저질러

후대에 내 이름을 남기겠다"라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분히

관심종자 혹은 싸이코패스 같은 발언을 하며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아르테미스 신전은 전소하게 됩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을 이를 심각하게 걱정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신전이 불타서 없어진 이후 에페소스의 점성가들은

얼굴을 치며 고함을 여기저기에 지르며

불탄 신전에 의해 재앙이 닥칠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집니다.

 

.

플루타르코스

 

 

 

 

 

 

 

 

 

 

 

 

아르테미스 신전 재건작업

왕과 백성들은 십시일반으로 이 아르테미스

신전을 복구하기 위해 

왕의 기둥기부,여인들의 보석 기부등의

그 나름대로의 복구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한 일화로, 정복군주로 알려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에페수스를 점령한 뒤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에 타서

원래의 모습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테미스 신전의 웅장함과 신비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이름으로 신전을

세울수있다면 재건하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고하네요

 

그러나 에페소스의 백성들은 다른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것에

꺼려하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에페소스인들은 자부심이 강하여

세계의 어디에서도 볼수없는

최고의 신전으로 재건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았고

 

당시의 최고의 신전은

파르테논신전이였는데..

그 파르테논 신전보다 2배이상의

큰 규모로 만들어 유일무이한

신전을 만들기 위해 심기일전 했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

 

그리하여 길이 137m, 너비 70m로 재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전은 순도가 높은 백색의 대리석만 사용되었으며

맑은날에는 마치 신전에서 자체발광을 하듯

신비롭고 아름다운 아우라를 발산했다고 합니다.

 

 

 

 

 

 

 

 

아르테미스 신전 정말 성역이였을까?

페르시아의 침공이 있을때

아르테미스신전은 최후의 피난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오자

 

에페소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들어가

자신을 줄로 묶고 "이곳은 성역이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인들 역시 아르테미스 신전을 신성함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신전 안으로 도망친 에페소스인들을

그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페르시아인

 

그것은 단순히 사람만이 아닌

동물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아르테미스 신전에 들어간 그 어떠한 것도

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위기

 

훗날 에페소스에는 기독교가 널리 만연해지면서

우상숭배를 받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급속도로 위협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우상숭배 금지를 원칙으로

우상숭배를 못하도록 하였지만

에페소스인들은 그것에 흔들리지않고

아르테미스와 신전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러던 서기268년

동게르만의 고트족의 습격으로 인하여

아르테미스 신전은 또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기간은 길지 않았으며

결국 아르테미스신전은 폐허가 되고 잊혀져 갔습니다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의 발견

1858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존 터틀 우드는 터키를 건축 관련 일로

방문했다가 우연히 잊혀져있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1863년

그간 찾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존 터틀 우드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후원으로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신전을 찾기 위해 올인하기 시작합니다.

 

1866년

 

그는 에페소스 유적지를 발굴하던 중 그리스의 비문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비문의 내용의 근거를 바탕으로 아르테미스 신전을

추적하기 시작하였고

 

1869년

6m 지하에 묻혀있던 사원 및 조각상,건물파편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신전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드디어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세상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였습니다.

 

발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일부분은

현재에도 세계적인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에서 볼수있다고 합니다.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 밑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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