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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미스터리>세계 7대 불가사의-피라미드 편

by Free_A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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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는 수많은 미스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마저

어떻게 생성 되었는지 그저 가설만 존재할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죠.

 

현대의 과학이 발달되었다고하나 , 현재의

과학으로도 풀수없는 많은 역사적인

미스터리 혹은 유적지가 존재하는데요

 

오늘은 그 중 하나인 이집트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피라미드

 

 

 

 

 

 

기자지역의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무엇이 의문점인가?

 

 

기원전 2500년경

즉, 우리나라의 최초의 나라 고조선건국(기원전 2333년경)이

세워지기도 167년전에 이 거대한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던 것이다

대략 20년간 230만개의 돌이 사용되었으며,

돌 하나의 무게는 2300kg이라고 알려져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본다면, 2300kg의 돌을 하루에 300개이상

700톤을 쌓은 셈이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학적으로 발달하지않았던 기원전 2500년경..

대체 운반은 어떻게 했던걸까요?

그리고 그 많은 양의 돌은 어디에서 가져 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정교하게 같은모양으로 깎을수있었을까요?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이토록 정교할수있던 이유는 무엇을까요?

 

 

 

 

 

 

 

 

유력한 가설

 

 

피라미드는 이집트왕조가 건설한 것이 아닌 외계거인족이 넘어와

기자지역에 정착하였으며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실제 한 작가가 기자지역의 도굴꾼으로부터 입수한 거대한 손가락 미이라

길이가 35cm, 사람의 유골이 맞다는 감정서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인의 손가락뼈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다른 미스터리

 

 

피라미드 내부의 벽화들..

빛이 들지도 않는 피라미드 내부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릴수있었던 것일까?

 

 

 

 

 

 

 

 

가설 1.횃불의 사용

 

 

횃불을 사용했다면 내부의 돌을 감정했을때

돌의 그을림이나 횃불의 유사성분이 발견되었어야

했을텐데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내부의 구조적인 특성상

협소하기 때문에 횃불을 사용하면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질식사의 가능성이 높으므로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가설2. 이집트인의 전구사용

 

 

덴데라 사원의 벽화

한쪽 끝에 소켓같은것이 있으며, 그아래에는 전깃줄과 전구

모양안쪽에는 꼬불꼬불한 필라멘트처럼 생긴것으로

보이는 형상화되어있는 벽화입니다.

 

노르웨이의 한 전기기술자가 이것을 보며 전기램프로 묘사

했으며,오스트리아의 피터 크라사&레이너 하백

파라오의 빛 그리고 고대이집트 첨단기술과 전기를

집필하며 가설의 뒷받침의 근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벽화뿐만아니라 벽화주변의 글자와

함께 해석해야 된다고 하며, 해석된 문자에서는

전구를 사용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수없다며

이를 일축했습니다.

 

 

 

 

 

 

 

 

피라미드의 용도는 무엇이였을까?

 

 

왕의 무덤일까?

 

 

 

대부분 이 피라미드의 용도는 그저 

이집트왕조의 왕들의 무덤이였을것이라고 추측하는데요

실제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기자의 쿠푸왕 대 피라미드의

피라미드 내부에는 그어떤 유물이나 유해도 없기때문입니다 

도굴을 당했다는 항간의 가설도 존재하지만

그 또한 도굴의 흔적조차 없습니다.

 

 

 

 

 

 

 

 

번외편

 

 

중국 서안 피라미드 - 동이족의 피라미드

 

 

서안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보다 더 크고 더 많은 규모의

중국 서안에 위치한 동이족의 고대 유적 피라미드

의문스럽게도 피라미드와 유물을 공개하지 않는 중국정부.

 

대략 5000년~6000년 전에 고조선인이 만든 유적지로

1945년 인근을 비행하던 한 조종사의 촬영에 의해 발견되었다.

러시아과학자 몰다로프라는 이 부근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하였고 주변 지역에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군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현재 피라미드는 중국의 공안에 의해서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 학술 조사가 불가능하며 중국에의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도르프가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몰래 잠입하여 피라미드를 발견하였다.

 

추후에 하우스도르프는 'Die weiße Pyramide'(하얀 피라미드)라는

책을 저술하며 피라미드의 존재를 서방세계에 알리며 비로소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하얀 피라미드는 조작이라며 일축하였다.

 

 

 

 

 

 

 

 

 

서안 피라미드에 관한 장문구씨의 증언

 

 

 

1960년대와 1970년대 중국에서 36명의 비밀 조사단이 꾸려져

유적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발굴에 참여했던 장문구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문자와 백김치, 중앙에는 상투 머리를 한 시체까지 발견되었다

뿐만아니라  많은 동이족 문물이 쏟아져 나오자 발굴단장은 이 유물들이

 

조선인의 유물임을 깨닫고 자존심이 상하여 철수시켰으며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을 장문구 씨 등에게 협박하였다.

하지만 장문구 씨는 임종 직전에 소신 발언을 하였으며

비로소 중국의 피라미드가 한국의 역사의 일부임이 알려졌다. 

 

 

 

 

 

 

 

 

 

한결같은 중국 정부의 태도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으로 잘알려진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강제적으로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 여전히 진행중이며,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한국과 같이 공조발굴,역사연구등은

극구 거부하며, 철저히 베일속에서 감시하에 중국정부 독자적으로

해석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특히나 본인들의 문화나 유적이 아닐 경우에 그들의 것으로

역사왜곡 및 편입을 시켜야하기때문에

한국학자들과 함께 발굴 및 공조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발해황후묘에서도 잘나타난다

발굴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디에도 공개하지않고

유적이 있는 입구주변을 철저히 감시한다

 

<심각한 동북공정의 실태>

KBS 역사스페셜 취재당시 중국 대학생 인터뷰
KBS 역사스페셜 취재당시 중국 대학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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