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

세계 7대 불가사의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

by Free_A 2023. 12. 14.
728x90
반응형
SMALL
소문으로만 듣던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을 발견하다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의 실체를 찾기위해

발굴을 하던 고고학자들은  이 신상을 제작했던 조각가 피디아스의 작업장으로

추측되는 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이 실체가 드러난 순간입니다

 

이 곳에서 고고학자들은 황금과 상아, 보석들을 깎고 조각하는데 사용한 끌과 연장들도 발견하였다.

게다가 유리로 된 신상의 옷을 만들기 위한 장치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작업장에서는 '나는 피디아스의 것이다'라고 적혀있는 도 발견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피디아스(기원전 480년경~기원전 430년) 그는 누구인가?
기원전 449년 페리클레스가 정권을 잡자 그의 친구인 페이디아스는 조각뿐 아니라 아테네의 예술 활동에 대한 전체적인 지배 위임을 받았다. 그 후 15년간은 그의 전성기로서 그 동안에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한 것은 그의 최대의 업적이다. 특히 우수한 신상을 만들어 '신들의 상 제작자'로 칭송되었다. 대표작으로 <아테나 레무니아> <올림피아의 제우스> <아테나 파르테노스> 등이 있다.

 

 

제우스상이 만들어진 이유

 

제우스 신상은 당시 올림픽 경기의 주최자들에 의하여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새로 지어진 제우스 신전에 기부되었다. 당시 최고의 역작이였던 아테네를 능가하기 위하여 아테나 신상의 설계자인 피디아스에게 제우스 신상의 제작을 요청했다.

 

제우스상의 구조와 작업

 

제우스신상

기간: 8년

높이: 13M

너비:6.5M

목재골격: 금과 상아 백향목,황금으로 만들어진 지팡이 망토 옥좌에 앉아있는 제우스상

그밖의 디테일은 은,유리,흑,보석을 사용

제우스 신상 발아래 받침대에는 올리브유가 가득 들어있는 연못이였다고 합니다

기원후 5세기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그저 그리스 시대의 기록과 동전에서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다

 

피디아스는 이 아름다운 신상의 디자인을 대체 어떻게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는 아래와 같이 답변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제우스신상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참고하여 만들었소"

 

스파르타 아기스왕가 출신의 무장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피디아스가 신상의 제작을 거의 끝낸 후 제우스 신에게 이 신상이 마음에 드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도를 드렸을 때, 곧바로 하늘에서 거대한 낙뢰가 지상으로 내려꽃혔다고 한다. 후에 그 자리에 거대한 청동 항아리가 놓여졌다고 한다.

 

 
제우스신상을 목격한 목격자의 증언
 

A.D 1C 지리학자 스트라보

 

"만약 그가 일어선다면, 지붕을 뚫어버릴 것이 틀림없다."

 

 

A.D 2C  파우사니아스

 

제우스 신상은 거대한 월계관을 쓰고 있었으며, 유리로 된 긴 로브를 두르고 있었으며, 동물과 영웅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황금 신상을 들고 있었으며, 옆에는 황금으로 조각된 거대한 독수리가 있었다. 그가 앉아있던 왕좌는 황금, 보석, 흑단, 보석 등으로 꾸며져 있었고, 영웅과 신화시대의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었다. 제우스 신상은 금으로 된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이 발을 얹은 받침대에는 아마존 여전사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신상 아래로 통하는 통로는 그림이 그려진 벽으로 막혀 있었고, 오직 허락받은 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신상의 주재료인 상아의 손상을 막기 위해 신관들은 주기적으로 신상에 올리브유를 발랐다. 신상 앞에는 바닥에 검은색 타일을 깐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에는 올리브유가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이 연못은 신상을 반사시켜서, 제우스 신상의 크기를 더욱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어느 장군

마치 신을 직접 마주하는 듯하다



플라비우스 아리엔 (그리스의 역사학자)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불행과 비극에서  차있는 사람
제우스신상을 본다면 어떠한 고통과 절망도 잊어버릴수있을것이라 말했다

 
필론(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



사람들은 다른 6가지의 불가사의에는 단지 눈을 크게 뜰뿐이지만
제우스신상 앞에서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무릎을 꿇을것이며 이는
제우스신상은 너무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하여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론

 

제우스 신상의 파괴

 

탐욕왕 칼리굴라의 제우스신상 파괴 시도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신상의 머리를 잘라낸 후 자신의 머리를 그 위에 올려놓고 싶어했고,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 일을 실행하기 전에 암살되버려, 파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칼리굴라의 죽음이 제우스 신상에 의해 예언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제우스 신상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주위의 가건물들이 무너지고 인부들이 공포에 떨었다."라는 기록이 그 소문의 근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칼리쿨라의 흉상

 

 

콘스탄티노플의 대화재

기원후 391년에 로마 황제가 특정 우상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고 모든 신전의 문을 닫아 버렸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도 이같은 조치로 인해 암흑에 잠겼고, 이같은 이유로 제우스 신상이 언제 도난, 약탈당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신상이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기원후 475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제우스신상
 

올림픽의 유래는 고대 그리이스의 올림피아에서 부터 출발하는데..

고대 올림픽은 B.C 776년에 시작되어 A.D 393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이스 인들은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동안 전쟁을 하지 멈추었고,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경배를 바쳤습니다.

 

수 많은 왕들과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저 마다의 값진 제물로

이 장엄한 신상을 장식하였습니다.

 

그러나 391년 로마의 황제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올림픽경기를 이교도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금지시키고 제우스 신전도 폐쇄시켜 버리자

제우스 신상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로마 제국 제50대 황제&nbsp; 테오도시우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